신라 진승왕순수비는 왜 세웠나요?!
진흥왕 순수비
진흥왕은 백제와 힘을 합하여 고구려의 땅인 한강 상류지역을 빼앗고, 대가야와 함께 쳐들어 온 백제 성왕을 관산성 싸움에서 크게 물리쳐 한강 중류지대를 차지하였습니다. 그 후 가야에 대한 정복 사업을 펴서 완산주를 설치하였고, 가야의 여러 지역을 완전히 정복하여 신라의 영토를 넓혔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순수(巡狩;임금이 나라 안을 살피며 돌아다니는 것)한 곳마다 기념비를 세웠는데 거기에는 넓어진 국경을 표시하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이 비석들은 광개토대왕릉비 다음으로 귀중한 금석문으로 유명하며, 당시 신라의 영토를 연구하는데 매우 가치가 높은 유물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창녕비, 북한산비, 황초령비, 마운령비 등 4개입니다. 북한산비는 국보 제3호로써 진흥왕이 순수한 기념으로 북한산에 있는 비봉의 꼭대기에 세운 것입니다. 높이 1.54m, 너비 0.7m, 두께 0.16m의 크기인데 다른 진흥왕순수비와는 달리 직사각형으로 다듬어진 돌을 사용하였습니다. 사이에 세워졌거나 그 이후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북한산비는 1972년 8월에 경복궁 근정전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1986년 8월에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로 옮겨졌습니다. 한편, 비가 서 있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사적 제228호로 지정하였습니다. 마운령비는 568년에 진흥왕이 신라의 확장된 영토를 돌아보고 세운 것인데 함경남도 이원의 마운령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니, 당시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려는 진흥왕의 기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비문에는 비를 세운 까닭과 진흥왕의 업적, 수행한 사람의 직위와 이름 등이 기록되어 있어 역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유물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함흥시에 있는 함흥본궁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