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구석물(具石物), 비갈문(碑碣文)

제주농부 2015. 4. 13. 14:37

 

 

구석물(具石物),  비갈문(碑碣文)


 묘소에 석물을 갖추는 것으로 석물은 비석을 비롯하여 묘소에 갖추는 돌로 만든 것을 말한다.

 비를 세우는 것을 입석(立石), 수비(竪碑), 수비(樹碑) 등으로 지칭한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후에 중국의 묘사(墓制)를 본받아

 처음으로 왕릉이나 귀족의 묘 앞에 비가 세워졌으나

 일반화한 것은 조선조에 들어와 상례가 법제화되어 예제(禮制)를 숭상하게 된 이후이다.

 

 문헌에 ‘비(碑)’라는 글자가 처음 나타난 것은 의례의 예기로서 진(秦)나라 이전에는,

 각석(刻石)이란 말은 있었으나 각석을 비라고 한 것은 한나라 때부터이다.

 

 고려나 조선조에는 벼슬에 따라 묘역과 분묘의 크기를 법으로 정하여 계급을 나타내었는데,

 무덤을 장식하는 석조문(石造文)에도 역시 규제가 있어 석상(石像), 망주석(望柱石), 비(碑), 갈(碣), 묘지명(墓誌命), 상석(床石), 혼유석(魂遊石), 향안석(香案石) 등을 만드는 데도 차이가 있었다.

 망주석 중 묘의 왼쪽 즉 동쪽 망주석의 도롱뇽은 양계(陽界)

즉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이고 오른쪽 즉 서쪽 망주석의 도롱뇽은 음계(陰界) 즉 땅으로 내려가는 형상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조상을 숭배하는 관념과 풍수설로 인한 묘지의 좋고 나쁨이 그 자손의 길흉화복에 크게 좌우된다는 속신(俗信)이 유행되어 일반적으로 석조물을 많이 세워 가문의 성세를 과시하는 폐단도 적지 않았다.

 

비(碑)는 단단하고 잘 다듬어지고 반들반들하게 잘 갈아서 비바람에 오래 견디는 것이 좋다.

비석돌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오석(烏石)이고 다음이 황등석(黃登石), 애석(艾石)이며 보통은 화강석을 쓴다.

 

비석에는 ‘비’와 ‘갈(碣)’이 있는데 비는 비신(碑身)과 비갓과 밑받침돌[龜跌]로 되어 있으며 갈은 비갓이 없고 위를 둥글게 한 것으로 소석비라고도 한다.

 

비몸의 겉면을 비양(碑陽)이라 부르고 겉면에 새긴 글을 비문 또는 명(銘)이라 부르고 비몸 뒷면을 비음(碑陰)이라고 부르고 그곳에 새긴 글을 음기(陰記)라고 한다.

대개 이름자와 세계(世系), 소석비에는 아무개의 무덤(○○○之墓)이라고만 새겨 무덤 바로 옆에 세운다. 또 흔히 석상(石牀․牀石)이라고도 하는데 앞면에 아무개의 무덤이라고 새기는 경우도 있다. 혼유석은 상석 북쪽에 놓고 무덤가의 전면 좌우에 망주석을 세우는데 근래에는 석상 곧 석인을 세우는 일은 드물다. 석상에는 문석(文石)과 무석(武石)이 있는데 문석은 문관의 형상을, 무석은 무관의 형상을 새긴 것이다.

 

 이 석인은 왕릉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의 무덤 앞에 세웠던 것으로 이곳에는 이외에도 석수(石獸)라 하여 말, 양, 사자, 거북 등의 짐승의 형상을 새긴 돌을 세워 장식과 수호의 상징으로 삼았다.


(1) 비갈의 종류


  ① 신도비(神道碑 : 죽은 사람을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생애를 기록하여 무

     덤 앞이나 길 가에 세운 비석)는 종이품 이상의 관원의 분묘가 있는 근처

     에 세우는 비명으로 당상관(통정대부)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이 찬술(撰

     述)하며 비두(碑頭)에 용틀임의 교룡이수(蛟龍禰首) 개석을 씌우고 농대석

     (籠臺石)으로 거북좌대를 할 수 있다.

 

  ② 유애비(遺愛碑)는 선정을 베푼 관원을 표창하고 그 공을 기리기 위해 백

     성들이 세운 비이다.

 

  ③ 불망비(不忘碑)는 공덕을 잊지 않기 위하여 백성이 세운 비이다.

 

  ④ 묘갈(墓碣)은 정삼품 이하의 벼슬을 지낸 사람의 분묘 앞에 세우는 비로

     소 사적(事蹟)을 쓰는 문체는 신도비와 같으나 규모가 작다.

 

  ⑤ 묘표(墓表)는 죽은 사람의 품계․관직․성명 등을 새겨서 묘 앞에 세우는

     굿돌이다.

 

  ⑥ 묘지(墓誌)는 지석으로 죽은 사람의 성명과 생과 졸, 행적, 좌향 등을 기

     록하여 무덤 앞에 남쪽에 묻은 돌이다.


(2) 비갈(碑碣)


 비는 비신의 위쪽이 직선으로 정면에서 보면 사각형을 이루는 것을 말하며 비신 위에는 가첨석(加檐石) 또는 관석(冠石)을 얹을 수 있고 비신 위쪽을 둥글게 만들며 가첨석을 씌우지 않는 것을 갈(碣)이라 한다.

즉 무덤 앞에 세우는 작은 비석으로 방부원수(方趺圓首)를 한다.


(3) 비면(碑面)의 서식


  ① 옛날의 비면 서식

 

 남자가 벼슬을 했으면 ‘벼슬이름 ○○이공(李公) ○○지묘(之墓)’라 쓰고

 벼슬을 하지 않았으면 ‘학생(學生) ○○이공(李公) ○○지묘(之墓)’라 썼으며,

 여자일 경우 남편의 벼슬에 따라 숙부인(淑夫人)․정부인(貞夫人)․정경부인(貞敬夫人) 등을 썼다.


  ② 현대의 비문 서식

 

 시장이거나 군수를 지냈으면 그 관직명을 그대로 쓰며,

 그렇지 않을 때는 아호(雅號)를 학생 대신에 ‘진산홍길동지묘(珍山洪吉童之墓)’

 또는 ‘면장영천이공지묘(面長永川李公之墓)’라 새기기도 하고

 여자인 경우 ‘경주이씨○○여사지묘(慶州李氏○○女史之墓)’,

 혹은 ‘고안동김○○여사지묘(故安東金東淑女史之墓)’라고 새긴다.

  남녀 공히 관작이나 사회적 직위 직명을 사실대로 쓴다.


  ③ 비면의 후면과 측면의 서식

 

  자손에게 전해야 할 사항은 꼭 기재해야 할 것이나

  대부분은 혈통관계를 장황하게 나열해 놓는데 그치고 있다.

  현대에는 고인의 약력을 기재하는 경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비의 측면은

 비를 건립한 자손의 이름, 비문을 지은 사람, 글씨 쓴 사람, 치산한 자, 건립일자를 적는다.

 그리고 단갈(短碣)을 세우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단갈은 키가 작은 것으로 고인의 이름만을 기재하며

 비갈이 없으면 상석 앞면에다 비면에 기재하는 자손의 이름을 적기도 한다.


  ④ 기공비(紀功碑)

 

  기공비, 기념비, 송덕비는 그 일과 관계되는 사람이 건립하는데 앞면에 ○○선행 기공비(기념비, 

  송덕비)라 쓰고 후면에 고인의 사적을 운문(韻文)이나 산문(散文)으로 적으며,

  측면에는 건립자와 건립일자를 기재한다.

  이 밖에 사적비가 있는데 이것에는 역사적 기록을 기재한다.


(4) 석상(石像)


 경제적 여력이 있어서인지 조상의 묘지에 여러 가지 돌 모양을 세우는 사람이 많다.

 고례에는 묘지의 석물도 규격이 있었으므로 여기에 제시한다.

석물

 품관

석등

(石燈)

석인

(石人)

석호

(石虎)

석양

(石羊)

석마

(石馬)

망주석

(望柱石)

1

1

2

2

2

2

2

2

 

2

2

2

2

2

3

 

 

2

2

2

2

4

 

 

2

 

2

2

5

 

 

 

2

2

2

6

석물 없음


  ① 비석의 규격

 

신 분 별

머리모양과 높이

몸체의 높이

몸체의 넓이

받침모양과 높이

1 품관

용(龍)     3척

8.5 척

3.4척

거북 3.6척

2 품관

린(麟)  2.8척

봉(鳳)  2.8척

8척

3.2척

거북 3.4척

3 품관

지붕모양 2.6척

7.5척

3척

거북 3.2척

4 품관

둥글게  2.4척

7척

2.8척

거북 3척

5 품관

둥글게  2.2척

6.5척

2.6척

거북 2.8척

6 품관

둥글게   2척

6척

2.4척

거북 2.6척

7품이하 서민

둥글게  1.8척

5.5척

2.2척

거북 2.4척


  ② 일반적인 묘지의 석물   

  ․ 상석(床石)                      ․ 혼유석(魂遊石) 

  ․ 향안석(香案石)                ․ 축판석(祝板石)

  ․ 주가석(酒架石)                ․ 비석(碑石)     

  ․ 망주석(望柱石)                ․ 내계석(內階石)


(5) 입석 관련 축문


  ① 입석전 산신축(立石前 山神祝)  

      유세차정축사월을유삭십칠일을축 유학김동춘

      維歲次丁丑四月乙酉朔十七日乙丑 幼學金東春

      감소고우

      敢昭告于

  토지지신 금위읍장 안동김공 묘의미구 자장 묘비상석망주

  土地之神 今爲邑長 安東金公 墓儀未具 玆將 墓碑床石望柱

      용위묘도  신기보우 비무후간 근이 주과 지천우  신 상 

      用衛墓道  神其保佑 無後艱 謹以 酒果 祗薦于  神 尙

  향

  饗

 유세차 정축 4월 17일 유학 김동춘은 토지신에게 감히 고하나이다.

 이제 읍장 안동 김공의 묘역에 의물을 갖추지 못하였던 바 이에 묘비․상석․망주를 세워 묘도를 호위할까 하오니 신께서 도우셔서 앞으로 후한이 없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삼가 주과로써 천신하오니 흠향하옵소서.


 산소에 석물을 드리는 것으로는 묘비(墓碑)․묘표(墓表)․상석(床石)․망주(望柱), 석인(石人) 등을 입석 하거나 지석(誌石)을 묻을 때는 먼저 산신에 고축한 후에 입석을 하고 입석 후에 묘에 고유 한다.


  ․ ‘자장(玆將)’ 다음에 입석하는 석물명(石物名)을 쓴다.

  ․ 근구모물(謹具某物)은 비지(碑誌), 상석(床石), 망주(望柱), 석인(石人) 등

     을 갖추는 석물명을 쓴다.

  ․ 용위묘도(用衛墓道)를 묘비(墓碑)일 때는 용표묘도(用表墓道)라 한다.


  ② 입석후 고묘축

 

        유세차정축사월을유삭십칠일경신 효자병환

        維歲次丁丑四月乙酉朔十七日庚申 孝子秉煥

        감소고우

        敢昭告于

   현고읍장부군지묘 복이 재물불체 의물다궐 금지유년

   顯考邑長府君之墓 伏以 財物不逮 儀物多闕 今至有年

        근구 묘비상석망주 용위묘도 복유  존령 시빙시의

        謹具 墓碑床石望柱 用衛墓道 伏惟  尊靈 是憑是依

 유세차 갑술 4월 17일 효자 병환은 아버님 읍장 묘소에 감히 고하옵나이다.

황송하옵게도 재물이 미치지 못하여 묘역에 의물을 갖추지 못하여 모자람이 있었사옵나이다.

 여러 해가 지난 이제 와서 삼가 묘비, 상석, 망주를 마련하여 묘도를 호위하오니 존령께옵서는 여기에 의지하여 평안히 계시옵소서.


  ③ 입석후 산신축

 

      유세차경진사월임술삭초구일경오 유학이동욱

      維歲次庚辰四月壬戌朔初九日庚午 幼學李東旭

      감소고우

      敢昭告于

  토지지신 금위조고처사부군지묘 근구 석물용위묘도

  土地之神 今爲祖考處士府君之墓 謹具 石物用衛墓道

  신기보우 비무후간 근이 주과 지천우  신 상 

  神其保佑 無後艱 謹以 酒果 祗薦于  神 尙

  향

  饗

 유세차 경진 4월 9일 유학 이동욱은 토지신께 감히 고하옵니다.

지금 조고 처사 부군의 묘소에 겨우 석물을 갖추어 묘도를 호위하였으니 신께서 보존하고 도우시어 후환이 없도록 하여 주시옵기 바라나이다.

 삼가 주과를 드리오니 흠향하옵소서.


  ④ 사토를 겸하여 입석후 묘사축 

      유세차경진사월임술삭초구일경오 효손동욱

      維歲次庚辰四月壬戌朔初九日庚午 孝孫東旭

       감소고우

       敢昭告于

   현조고처사부군지묘 일월유구 묘지붕괴 자이길신

   顯祖考處士府君之墓 日月愈久 墓地崩壞 玆以吉辰

       개봉사토 잉립석물 이표영역 근이 청작서수 용신전헌 상

       改封莎土 仍立石物 以表瑩域 謹以 淸酌庶羞 用伸奠獻 尙 

   향

   饗

 유세차 경진 4월 초9일 효손 동욱은 할아버님의 묘소에 감히 고하옵나이다.

 세월이 오래 되어 묘소가 붕괴되어 이에 좋은 때에 사토를 고쳐 쌓고 따라서 석물을 세워 무덤의 영역을 표시 하였사옵나이다.

 삼가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제수를 드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⑤ 묘사시 입석고유축  

       유세차경진사월임술삭초구일경오 효손동욱

       維歲次庚辰四月壬戌朔初九日庚午 孝孫東旭

       감소고우

       敢昭告于

   현조고처사부군지묘 첨소유년 묘의미구 금전석상

   顯祖考處士府君之墓 瞻掃有年 墓儀未久 今奠石床

       용신위의 근이 청작서수 지천세사 상

       用伸衛儀 謹以 淸酌庶羞 祗薦歲事 尙

   향

   饗

 유세차 경진 4월 초9일 효손 동욱은 할아버님의 묘소에 감히 밝게 고하옵나이다.

무덤을 첨소한 지 여러 해 동안 묘소에다 석물을 갖추지 못하였는데 지금 상석을 바쳐서 호위하는 의용을 폈사옵나이다.

 삼가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제수를 공경히 드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 입석행사 고유는 참신, 강신, 삼헌, 사신 순으로 묘사의(墓祭儀)에 따른다.

  ․ 묘비(墓碑), 단비수갈(壇碑竪碣) 때에는 제막(除幕)을 하고 행사한다.

  ․ ‘근구모물(謹具某物)’에는 석물에 따라 신도비(神道碑), 묘비(墓碑), 묘갈

     (墓碣), 묘표(墓表), 상석(床石), 망주(望柱), 석인(石人), 지석(誌石) 등으

     로 구분하여 쓴다.

  ․ 친속(親屬)에는 만일 합폄(合窆)이면 비위(妣位)을 병서(幷書)한다.

  ․ ‘용위묘도(用衛墓道, 또는 用衛神道)’는 상석, 망주, 석인 등에 쓰고 신도

     비, 묘비, 묘갈, 묘표 등에는 ‘용표묘도(用表墓道, 또는 用表神道)’ 혹은 ‘위

     표묘도(爲表墓道, 또는 爲表神道)’라 쓴다. 또 지석에는 ‘근구 지석매우연

     문(謹具 誌石埋于羨門)’이라고 쓴다.

 


출처 : 한국전례원 - 韓國典禮院 - ( jeonyewon )
글쓴이 : 根熙 김창호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