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금(61)씨는 갑자기 어지럼증이 생겼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도 빙빙 돌듯이 어지럽고 외출시에도 차를 탈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워 이비인후과에 가보니 귀에는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본원에 내원했다.
몸은 뚱뚱한 편이었으며 어지러운 증상과 함께 쉬 피로하고 평상시 음식을 먹으면 잘 체하며 속이 입덧한 것처럼 자주 메슥거린다고 했다. 진맥상 비위의 맥상이 약하고 무력했다. 기혈순환 장애와 함께 비위기능이 약해져 구역질을 동반하는 어지럼증으로 보고 기운과 혈을 보해 주는 처방과 몸속에 쌓인 담음(痰飮·노폐물)을 제거하는 처방을 위주로 치료한 후 증세가 많이 호전됐다.
진료를 하다 보면 이씨처럼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어지럼증은 그 상태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고속회전 놀이기구를 탄 것 같이 빙빙 도는 회전성의 것으로, 이를 현훈증(眩暈症)이라 한다. 다른 하나는 배나 비행기를 탄 것 같이 눈앞이 아찔하면서 공중에 뜬 것 같은 부동성의 것으로, 이를 현기증(眩氣症)이라 한다.
회전성 어지럼증은 대체로 귀의 전정기관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메니에르씨병’에서 나타난다. 이 병은 몸의 균형감각이 흐트러져서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심한 어지러움과 함께 이명, 난청, 구역질 등을 동반한다. 이때는 가능한 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다.
움직이지 않을 때 나타나는 어지러운 증세는 고열을 수반한 감기나 고혈압, 뇌의 혈류장애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이 중에 문제가 되는 것은 뇌종양 혹은 뇌출혈에 의한 뇌의 압박이나 뇌저동맥의 순환장애로 뇌의 혈류량이 감소하면서 나타나는 현기증이다. 뇌의 혈류 장애로 일어나는 현기증의 원인으로는 뇌동맥경화가 가장 많다.
흔히 일어설 때 나타나는 기립성 현기증은 빈혈과 저혈압 환자에게서 뇌에 공급되는 혈액의 양이 감소해 발생한다. 이런 어지럼증을 한방에서는 혈훈(血暈) 또는 기훈(氣暈)이라고 부른다. 이때는 기혈(氣血)이 허약한 것으로 보아, 혈이 부족할 때는 보혈(補血)을, 기가 허약할 때는 보기(補氣)하는 처방을 주로 쓴다.
그런데 이런 빈혈이나 저혈압 증세가 아닌데도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여자들이 있다. 바로 갱년기 장애를 겪는 경우다. 통계에 의하면 이 시기에 3분의 1의 여성들이 어지럼증을 호소한다고 하는데 이때는 갱년기 때 부족하기 쉬운 몸의 진액(津液)을 보충해주고 여성호르몬의 균형을 잡아주는 한방처방이 효과적이다.
체내 노폐물의 과잉축적으로 인한 담음의 증가로 생기는 어지럼증은 머리나 몸이 무겁고 어지러우면서 구토 등을 동반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담훈(痰暈)이라 부르는데, 기혈의 순환불량이 두드러진다. 이때는 몸속에 쌓인 담을 제거하는 처방이 필요하다. 당연히 고지방 음식이나 고칼로리 식단도 피해야 한다.
이 밖에 약물중독이나 자율신경 실조로도 현기증이 생길 수 있다. 이처럼 한의학에서는 어지럼증을 원인에 따라 치료방법을 달리한다.
어지럼증의 진단과 치료에 있어서 자가진단으로 단순히 철분부족에 따른 빈혈로 생각해 철분보충제만 복용하는 우를 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