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화초입산(4급) : 겨우내내 방콕만 하다가 꽃피는 춘삼월이나 또는 여름날 해수욕장에
드러 누워 오가는 비키니 아가씨들 감상하다가 만산홍엽이 불타는 가을에만 지가 힐러
리인 양 장비 챙겨 산꾼으로 돌변한다.
7. 음주입산(3급) : 산신과 하산주를 마셔야 산행이 끝나고 자연과 일체를 이룬다고 주장
하며, 어떤 때는 정상에서부터 취해 비틀대며 산삼과 더덕을 캐어 블로주를 담아 내연
의 여인에게 준다고 야료를 부린다.
8. 속보입산(2급) : 수호지의 대종이 갑마를 찬 듯이 무조건 빠르게 가려고만 하여 하루에
얼마를 걸었는지 또 자기 허벅지가 얼마나 굵고 딴딴한지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것을 낙
으로 삼는다.
9. 무시입산(1급) : 비가오나 눈이오나 제사가 있거나 아이가 수능을 보거나 해산을 앞두
고 끙끙대는 마누라 팽개치고 친구 따라 금강산 구경나선 풍류한량 정수등처럼 아무
구애 받지 않고 계획한 산행은 죽어도 간다.
10. 야간입산(초단) : 이제 산에 대해서 조금 자신이 붙으나 산에 갈 시간이 없음을 한탄하
며 주말은 물론 퇴근 후 밤에도 산을 오르며 특히 이 시기에는 산의 향기와 낯선 여인의
포 근함이 일체화를 가져와 주로 젊은 여성들이 많이 낀 무박산행을 무척 즐긴다.
11. 면벽입산(2단) : 무박야간산행의 시기의 평범한 등산로를 걷는 것에는 이제 만족을
하지 못해 암벽이 무슨 애인쯤인 양 아찔한 능선 위를 뛰거나 틈도 없는 바위허리에 지
가 무슨 스파이더맨인 양 붙어 개지랄을 친다.
12. 면빙입산(3단) : 겨울 빙폭의 모험을 즐기고자 날씨가 추워지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얼
음도끼와 쇠발톱을 꺼내 놓고 만지작거린다. 애들이 먹는 어름과자에도 처마 끝에 매달
린 고드름에서조차 설악빙폭의 꿈을 꾼다.
13. 환청입산(4단) : 면벽과 면빙수도를 마치고 좀더 큰 산을 오르고 싶은 욕망에 산에 대
한 정보를 닥치는 대로 수집하며 밤이면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히말라야의 준령들을 눈
보라를 뚫고 정복하는 환영과 몰아치는 폭풍설이 울부짖는 소리의 환청에 잠을 깬다.
14. 설산입산(5단) : 힐러리는 34세의 나이에 텐징과 함께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는데
자기는 더이상은 미룰수 없다며 입술을 깨물고, 제갈량이 후한 중국을 통일코자 출사표
를 던지고 오장원으로 출정하듯이 비장한 "생즉필사 사즉필생"의 글귀를 남기고 만년설
의 히말라야로 원정대를 따라 필생의 길을 떠난다.
15. 자아입산(6단) : 실존하는 수많은 고봉준령들과 인생에서 넘어야 할 많은 어려운 산들
중에서 진정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사람과 산은 뗄레야 뗄
수 없는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16. 선계입산(7단) : "산 아래 산 없고 산 위에 산 없다." "속계와 선계의 경계가 어드메뇨?"
하고 선문답을 즐겨하며 유유자적 산을 오른다. 이때 내딛는 발자욱마다 고목에 쌓인
두께마냥 세월의 무게가 묻어난다.
17. 회상입산(8단) : 작은 산도 큰 산도 이제 모두 마음 속에 있다. 최고의 검술가는 앞에
선 아름드리 거목을 검이 아닌 마음으로 베듯이 이때는 마음으로 산을 오르며 내려 올
때 하산주 한잔과 더불어 지나온 인생을 회상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18. 불능입산(9단) : 장자의 나비처럼 "내가 산인가? 산이 나인가?" 이미 이승을 떠나
흙으로 돌아가 올라갈 수 없는 산에 묻혀 스스로 작은 산이 된다.